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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o young to die 사촌 언니의 아들이 지난주 금요일에 죽었다고 한다. 나와 10년도 넘게 차이나는 사촌 언니와는 자라오면서 별 추억도 없었고 그 동안 왕래하던 사이는 아니다. 하지만 언니는 엄마가 생전에 가장 아끼던 조카였다. 그렇기 때문에 엄마가 계셨을 때는 만나지 않아도 서로의 근황을 자연스럽게 알았다. 엄마가 돌아가신 후에는 그게 더 이상 쉽지 않았지만, 서로 안부를 묻지 않아도 '잘 지내고 있으려니'하고 생각하게 되는 그런 관계였다. 정말 오랜만에 작년 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 만난 언니는 하나 뿐인 아들을 '다 키워놓았다'는 여유를 보이셨다. 아들이 IT 전공자라 자유로운 외국 기업으로 옮기고 싶어한다고 하신 기억이 난다. 우리집에 조금 남아 있는 그 조카의 흔적들이 있다. 조카가 어린 시절, 언니네 가족은 미국에서.. 2021. 11. 9.
40대의 인간 관계, 쉽지 않네요 20대 때는 내가 '인싸'라고 믿어 의심하지 않았다. 서른 살이 되기 직전 치뤄진 나의 결혼식에서도 내가 인싸임이 증명되었다고 본다. 직계 가족과 친척들과의 사진 촬영 후 찍은 친구 사진을 무려 세 번이나 찍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마지막에는 사람이 너무 많아 사진사 분이 '첫번째 줄은 무릎을 꿇으세요'라고 주문했을 정도다. 물론 이 때의 친구들은 중고등학교, 대학 그리고 사회 생활에서 만난 사람들이 다 포함되었다. 친밀의 정도는 있었지만 결혼식에 불렀을 정도니 가끔 전화해서 만나는 것도 자연스러웠고 단체로도 많이 만나곤 했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영양가는 없는 만남도 많았지만) 30대는 실직, 출산, 독박육아, 모친상 등 인생의 지옥 속을 헤매느라 인간 관계에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둘째를 낳고 1년.. 2021. 11. 2.
한국 드라마 몰아보기 - 사랑의 불시착 원래 드라마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드라마의 시간이 너무도 길어서다. 그 동안 2시간 정도의 영화 런닝 타임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2시간이면 충분히 풀어낼 수 있는 얘기를 16부작으로 보다보면 곁가지가 너무 많아져서 버겁게 느껴졌다. 스토리 한 편을 이해하기 위해 내 금쪽 같은 일상을 거의 열 몇 시간 이상씩 할애를 해야하다니, 나이가 들면서 조급해지는 성질과도 맞지 않았다. 그러나 코시국이 온 뒤 극장보다는 OTT가 부상했다. 영화 제작은 점점 힘들어졌다. 최측근을 비롯하여 영화를 준비해 온 모두가 이제는 드라마를 만들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특히 한국 드라마는 현 시점에서 가장 돈이 많이 되는 컨텐츠라는 것을 피부로 느낀다. 전 직장에서 해외 세일즈 업무를 했는데, K-pop .. 2021. 10. 4.
퇴사한지 한 달째 무엇이 좋고 무엇이 별로인가 퇴사한지 한 달 째다. 엄밀히 말하면 한 달이 조금 안되었지만 회사에 퇴직 의사를 밝히고 비정기적으로 출퇴근한지는 벌써 한 달이 넘었다. 퇴사를 결심했을 때부터 퇴사 이후에도 규칙적으로 출퇴근하는 것처럼 생활하겠다고 다짐했다. 오랜 기간 집에서 육아와 살림을 해본 경험이 있기 때문에 이런 작은 원칙 하나라도 세워두지 않으면 하루가 얼마나 허무하게 흘러가는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일단 아침 식사 후 대강의 집안 정리를 끝낸 뒤 출근하는 것처럼 씻고 옷을 갈아입고 악세사리도 한다. 처음에는 애들이 "엄마 어디 나가?"라고 물었을 정도다.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는 조금이라도 긴장하기 위해서, 침대에 절대 눕지 않기 위해서다. 오전 9시가 되면(전 직장의 업무 시작 시간이 9시였다.) 무조건 노트북을 켠다... 2021. 9. 2.
올해 최고의 웹드라마 '좋좋소' (스포있음) 2년 전 어느 중소기업에 재직하던 시절, 동료 중 나보다 10년 어렸던 친구 J는 트렌드에 앞선 친구였다. 그래서 가끔 콘텐츠들을 추천해 주곤 했는데, 그 때 소개받은 유튜브 채널이 '이과장'이었다. 아마추어 같은 동영상이었지만 여러 내용 중 '중소기업의 복지는 냉장고와 정수기다'라는 내용을 보고 실신할 정도로 공감했던 기억이 있다. 그 후 그 회사를 시원하게 떠나고 또 다른 중소기업에서 1년 반을 보냈다. 그리고 다시 한번 떠났다. 쿨하게. 그 동안 많이 멀어진 콘텐츠 산업과 좀 친해져 볼 심산으로 파트너에게 여러 작품을 추천 받았는데 그 중 하나가 소위 유튜브에서 '떡상했다'는 웹드라마 '좋좋소(좋소 좋소 좋소기업)'였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이 걸작 웹드라마가 '냉장고가 중소기업의 .. 2021. 8. 30.
소중한 사람으로 존재한다는 것 어제는 내 생일이었다. 나이를 세는 것도 덧 없고 새로 들어간 회사에 적응하느라 생일에 대한 감흥이 없었다. 그런데 생일이어서 좋았다. 감사했다. 아이들은 나보다 더 일찍 일어나서 전자레인지 케이크를 구웠다. 미리 사둔 선물도 주었는데 다이소에서 내가 좋아하는 과자로만 엄선한 종합 선물 세트다. 편지도 정성스럽게 쓰고 내가 제일 좋아하는 펭수 그림까지 그려주었다. 친구나 친지들로부터 받은 축하의 말이나 선물은 부담이 아닌 나에 대한 관심의 증거로 느껴졌다. 1년에 한 번 내가 누군가의 소중한 사람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확인했다. 이게 가장 큰 선물이다. 2020. 1.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