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한지 한 달 째다.
엄밀히 말하면 한 달이 조금 안되었지만 회사에 퇴직 의사를 밝히고 비정기적으로 출퇴근한지는 벌써 한 달이 넘었다.
퇴사를 결심했을 때부터 퇴사 이후에도 규칙적으로 출퇴근하는 것처럼 생활하겠다고 다짐했다. 오랜 기간 집에서 육아와 살림을 해본 경험이 있기 때문에 이런 작은 원칙 하나라도 세워두지 않으면 하루가 얼마나 허무하게 흘러가는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일단 아침 식사 후 대강의 집안 정리를 끝낸 뒤 출근하는 것처럼 씻고 옷을 갈아입고 악세사리도 한다. 처음에는 애들이 "엄마 어디 나가?"라고 물었을 정도다.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는 조금이라도 긴장하기 위해서, 침대에 절대 눕지 않기 위해서다. 오전 9시가 되면(전 직장의 업무 시작 시간이 9시였다.) 무조건 노트북을 켠다. 큰 아이의 온라인 수업 시간에 맞춰 점심을 먹고 오후 6시에 업무를 마친다. 집에만 있기 답답할 때는 근처 카페나 도서관에 다녀온다.
이렇게 나름대로 규칙을 정해서 생활을 하고 있기는 하다. 물론 변수들이 많다. 갑자기 아이와 병원에 다녀와야 한다든지, 은행 업무 같은 것이 생겼을 경우다. 그래도 무언가 하나씩 결과물이 생겨날 때마다 그 날을 충실히 잘 보냈다는 생각이 든다. 다행이다.
퇴사해서 좋은 점은.
- 갈구는 상사와 개기는 동료가 없다. 불합리한 일처리를 보며 감정을 손상시킬 일도 없다.
- 출퇴근의 고됨이 없다.(하루 2시간이 덤으로 생겼다)
- 아이들이 눈에 띄게 살이 오른다. (그 동안 줄기차게 먹어댄 정크푸드를 끊어버린 결과다)
반대로 퇴사해서 별로인 점은.
- 사소한 것을 나눌 동료가 없다. 새삼스럽게 재확인했다. 나는 수다스러운 사람이었구나.
- 나만의 고립된 시간이 줄어들었다. 출퇴근 시간이 바로 그런 시간 중 하나였는데.
- 하루 세끼 밥을 차리게 된다. 지친다. 우리 애들은 왜 하루 두끼에 만족하지 못하는가.
나는 퇴사를 하면서 1인 디지털 노마드의 삶을 선택했다. 이제 겨우 한 달이 지났는데 앞으로 무척 길게 이 생활을 지속해야할지도 모른다. 부디 지치지 말고 계속할 수 있기를. 수다가 고픈 것은 괴로우니 주변의 새로운 커뮤니티를 찾아봐야겠다.
그런데 다시 한번 확인했다.
퇴사했다고 하늘이 무너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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