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0월부터 일하기 시작한 회사를 13개월 만에 퇴사했다.
이 회사와의 시작점을 생각해 보면 매우 현실적인 이유가 있었다.
작년 봄 무렵, 사는 게 막막했다. 경력 단절 7년을 거쳐 남편 회사의 사무보조, 매장 판매와 같은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다 '이제는 무얼 먹고 살아야 하나' 싶었을 때 기술이라도 배워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제과제빵 기능사 자격을 취득한 것이다. 프랜차이즈 제과점 기사 자리로라도 입사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때 작은 회사의 임원으로 있던 대학 선배에게 연락이 왔다. 40대임에도 불구하고 '사무직' 입사 제안을 받은 것이다. 잠깐의 고민이 있었지만 바로 회답한 이유는 '어쩌면 이 제안이 내게 오는 마지막 사무직 제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대학을 졸업하기도 전에 무리 없이 취업해서 30대 초반까지 사무직으로 신 나게 일한 경험이 있던 나. 그 뒤 결혼, 출산, 육아를 거쳐 무직자로 지낸 세월을 거쳐 다시 취업 시장에 나왔다. 그 막막함이란... 40대가 사무직으로 취업하기가 얼마나 힘든지 바로 체감해 버렸다. 시간제 아르바이트까지 해보니 알게 되었다. 내가 처음 사회생활을 한 사무직이 얼마나 쾌적한 환경에서 비교적 높은 보수를 받는 일인지.
그래서 시작한 일. 작은 회사라서 시스템도 없고 이해할 수 없는 상황도 더러 있었지만 2-30대의 나에게는 없던 '연륜' 덕분으로 일을 잘 해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람 간에 생기는 껄끄러움과 업무 성과에 대한 회의는 퇴사를 결심하게 했다.
다시 무직 상태인 막막함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고민할 때 또 다른 회사가 나를 불렀다. 2년 전 매장 판매 아르바이트를 했던 회사였다. 회사가 성장하고 업무가 많아져서 구인 중이었는데 내가 생각났다는 것이었다. 지난 회사가 내게는 마지막 회사 생활일 줄 알았는데. 길은 뜻하지 않게 열리나 보다. 감사하다.
결과적으로 운이 좋았다고 할 수 있지만 일을 해야겠다는 열망이 이 길을 연 것이 아닐까 싶다. 그렇다면 제빵은? 영화는? 결국 내가 하고자 하는 일들을 내 의지대로 할 수 있는 상황이 언젠가는 오지 않을까. 지금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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