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피아노 다시 치기

성인 피아노 학원 레슨 4개월 차 후기

by 가늘고길게 2022. 11. 9.

올해 7월부터 집 근처에 있는 성인 피아노 학원에 등록해서 지금까지 다니고 있다.

이 학원을 선택한 가장 큰 이유는 접근성이다. 시설과 레슨의 퀄리티 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걸어서 7분이면 도착할 수 있기 때문에 지금의 학원을 선택했다. 모두 업라이트 피아노로 구비되어 있고 연습용 피아노들은 사실 상태가 별로 좋지 않은 것이 아쉽다. 하지만 평일에는 밤 10시까지, 토요일에는 오후 8시까지 운영되고 있어서 원한다면 언제든지 가서 연습할 수 있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첫 등록 후 3주 간 레슨 받은 선생님은 솔직히 별로였다. 두번째 달은 등록하지 않거나 원장님에게 레슨을 요청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3주째 되었을 때 그 분이 그만둔다고 얘기했다. 그제서야 그간의 상황이 이해가 되었다. 조금 있으면 그만두는데 새로운 원생을 가르치기가 버거웠을 것이다. 게다가 30년 만에 피아노를 다시 시작하는 손 볼 게 많은 학생이엇으니. 그래도 첫 선생님에게 바흐 인벤션 1번을 마쳤다. 곡이 수록된 악보가 야마하 디지털 피아노를 구입하면 끼워주는 명곡집이었는데, 아무래도 다른 악보에 비해 손가락 번호가 잘 맞지 않았다. 첫 선생님은 손가락 번호를 다시 달아주는 수고를 해야만 했다. 귀찮았으리라 생각한다. 그게 레슨 중에 드러나서 사실 배우는 입장에서는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다. 대신 오기로 하루에 2시간 이상 연습을 했다. 그렇게 3주 정도 지나니 인벤션 1번은 어느 정도 칠 수 있게 되었다.

그 다음 곡은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11번의 3악장. '터키 행진곡'이었다. 이때부터 새 선생님과 레슨을 받았다. 평소에도 교육자는 서비스 제공자라고 생각하는 편인데, 이 분이 다행히 그런 분이었다. 활달하고 칭찬이 풍부했다. 그리고 잘못된 부분에 대한 지적도 거침없었다. 내가 전반적으로 손가락에 힘이 없고(특히 4, 5번) 레가토가 뭉개지며 옥타브로 치는 부분은 불안정했다. 이 부분을 지적 받아 나름대로 열심히 연습했다. 일부러 암보를 하려던 것은 아닌데 저절로 암보가 될 정도였다. 하지만 연주는 늘 아쉬웠다.

아쉬운 상태에서 선생님의 제안으로 베토벤 월광 소나타 1악장을 나갔다. 오른손 4,5번 힘을 키우기 위해 곡을 추천하신 것이다. 취미로 치는 피아노이다 보니 하농이나 체르니 같은 에뛰드는 따로 배우지 않았다. 간혹 집에서 혼자 치기는 하는데 학원에서는 레슨 곡을 통해 같이 테크닉을 연습하게 하는 것을 권했다. 배우는 입장에서는 좀 덜 지루하다. 물론 전공하는 사람들처럼 테크닉이 탄탄하게 느는 것은 아니겠지만. 하여튼 월광 1악장도 어찌저찌 치게 되었다. 물론 이 곡을 그럴싸하게 치기란 너무도 어렵다는 것을 체감했다. 어릴 때와는 다르게 귀는 트여서 내가 치는 피아노 소리가 얼마나 후지고 별로인지 바로 들렸다. 이런 체득이 거듭될 수록 피아니스트들의 연주가 얼마나 훌륭한지 알게 되었지만.

월광 소나타가 얼추 마무리 될 무렵, 선생님이 앞서 배운 터키 행진곡을 쳐보라고 했다. 중간 부분에 피아니시모로 시작되는 스케일 부분이 있다. 그 부분이 항상 뭉개지곤 했는데 전보다는 잘 되었다. 옥타브로 세게 치는 부분도 전보다는 힘이 생겼다. 시간이 지나 연주가 조금이라도 향상된 것을 느낄 때야 말로 피아노를 칠 때 느끼는 가장 큰 즐거움이다.

이어서 레슨 받은 곡은 슈베르트 즉흥곡 op.90 2번. 스케일의 끝판왕을 연습할 수 있는 곡이었다. 월광 소나타와 다르게 템포도 무척 빨랐다. 처음에는 곡이 내 수준에 비해 많이 어렵다고 느꼈다. 거의 악보의 마디 마디를 뜯어가며 연습했는데 느리게 시작하여 서서히 속도를 올리는 중이다. 여전히 잘 안되는 부분은 계속 미스터치가 발생한다. 뿐만 아니라 악상을 지키는 것도 배우는 중인데 피아노와 피아니시모, 포르테와 포르잔도를 세심하게 표현하는 것이 정말 어렵다. 산을 넘었는데 매번 또 다른 산을 만나는 기분이다. 과연 이 곡을 오리지널 템포로 언제 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꾸준히 연습하게 된다.

골프나 필라테스 같은 것을 배울 수도 있었다. 하지만 피아노를 배우기 잘 했다.

오래도록 꾸준히 이 길을 가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