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고전을 쉽게 해석한다는 고미숙 님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으나 정작 그의 책은 읽어보지 못했었다.
그러다 얼마전 종료된 '길 위의 인문학'이라는 온라인 강좌에 이 분이 강사로 있는 것을 보고 신청했다. 3주간 진행된 주 1회짜리 강연은 솔직히 큰 임팩트는 없었지만 바로 도서관에서 이 두 책을 빌렸다.
- 살아가는 데 있어서 가장 귀한 가치는 무엇인가?
- 그 가치를 따르려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 그렇게 살다 간 사람이 있나?
- 정말 그렇게 살아도 되나?
<조선에서 백수로 살기>와 <읽고 쓴다는 것, 그 거룩함과 통쾌함에 대하여>는 위의 질문을 갖고 있는 사람에게 현실적인 솔루션을 준다. <조선에서 백수로 살기>는 우리 시대 청년들을 대상으로 한 책인데 청년이 아니더라도 삶의 지향점을 놓치고 있다면 많은 조언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저자는 연암 박지원이라는 인물에게서 그 답을 얻었다. 역설적이게도 우리는 서양의 작가보다 우리 나라의 작가를 더 모른다. 그저 조선시대의 ‘실학파’라고 국사 시험용으로 암기되었을 뿐인 이 인물은 그 명성에 비해 세속적인 부귀영화를 누리지 않았다. 대신 누구보다 자유롭게 읽고 쓰기를 계속했다. 주변 사물과 인물들에 대해 늘 애정 어린 시선을 유지했다. 늘 탐구하고 창작하며 다양한 친구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이 가치 있다고 연암을 통해 말해 주고 있다.
<읽고 쓴다는 것…>은 <조선에서 백수로 살기>에 이은 실행, 실천법을 담은 책이다. 글쓰기가 늘 어려운 내게 필요한 방법론이 꽤 구체적으로 제시되었다. 하지만 압박과 결과물에 대한 공유가 없는 홀로 글쓰기는 어려운 법. 그래서 저자는 그렇게 인문학을 실천할 수 있는 공간들을 만들었나 보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가보고 싶다.
<열하 일기>를 조만간 읽어야 하는 것도 과제가 되었다.
다음은 밑줄 그은 내용들.
- 정규직이 타임푸어라면 백수는 타임 리치다.
- 의식주의 기초가 해결되면 그다음에 중요한 건 네트워크다. 혈연을 벗어나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결망을 구축해야 한다. 사람들이 정규직을 그토록 원하는 것도 돈이 전부는 아니다. 사람을 만나는 현장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 글쓰기는 나처럼 제도권에서 추방당한 이들의 불가피한 선택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수행해야 할 근원적 실천이라는 것.
- 인식을 바꾸고 사유를 전환하는 활동을 매일 매순간 수행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역시 써야 한다. 쓰기를 향해 방향을 돌리면 그때 비로소 구경꾼이 아닌 생산자가 된다.
- 4차 산업혁명에 대한 온갖 정의들이 있지만 나는 감히 이렇게 규정하고 싶다. 백수가 백세사는 세상!
- 인생의 주기 중 언젠가는 혹은 수시로 직업 없는 상태에 돌입해야 한다.
- 정규직에 취업해도 또 중도하차하지 않아도, 정년을 무사히 마친 다음에도 아주 긴 시간을 직업이 없는 상태로 지내야 한다는 뜻이다. 결국 백수는 특별한 상태가 아니라 누구든 거쳐야 하는 보편적 코스가 되었다. 당연히 노동을 중심으로 삶을 기획하는 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노동은 하나의 요소일 뿐이다. 대신 관계와 취향, 여가와 휴식, 성찰과 지혜 등이 삶의 전면에 나서게 되었다. 어찌 보면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먹고 사는 문제게 매달리지 않아도 삶을 영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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