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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쳐

올해 최고의 웹드라마 '좋좋소'

by 가늘고길게 2021. 8. 30.

(스포있음)  

  2년 전 어느 중소기업에 재직하던 시절, 동료 중 나보다 10년 어렸던 친구 J는 트렌드에 앞선 친구였다. 그래서 가끔 콘텐츠들을 추천해 주곤 했는데, 그 때 소개받은 유튜브 채널이 '이과장'이었다. 아마추어 같은 동영상이었지만 여러 내용 중 '중소기업의 복지는 냉장고와 정수기다'라는 내용을 보고 실신할 정도로 공감했던 기억이 있다. 

  그 후 그 회사를 시원하게 떠나고 또 다른 중소기업에서 1년 반을 보냈다. 그리고 다시 한번 떠났다. 쿨하게. 그 동안 많이 멀어진 콘텐츠 산업과 좀 친해져 볼 심산으로 파트너에게 여러 작품을 추천 받았는데 그 중 하나가 소위 유튜브에서 '떡상했다'는 웹드라마 '좋좋소(좋소 좋소 좋소기업)'였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이 걸작 웹드라마가 '냉장고가 중소기업의 복지'라는 명언을 한 이과장 채널에 올라와 있었다. (게다가 이과장님이 직접 '이과장'으로 출연까지 한다.)

신입사원 '조충범'으로 시작되지만 주인공은 '이과장'

  총 26편의 에피소드로 구성된 '좋좋소'는 신입사원 조충범이 정승 네트워크라는 중소기업에 취업하면서 시작된다. 드라마 '미생'과 많이 비교되고 회자되기도 하는데 '좋좋소'는 깨알같은 중소기업에 대한 디테일이 잘 살아있다. 직원 10명 이내의 중소기업에 다녀본 사람이라면 감탄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를테면, 내가 무릎을 친 디테일들은 바로 이런 것들이었다.

- 입사 면접은 두서가 없고 근로 계약서는 얘기하지 않으면 체결되지 않는다.

- 근로 계약서를 체결할 때 내가 계약을 맺는 회사명이 다르다. 대표는 '같은 회사'이며 별 문제가 없다고 한다.

- 회사는 늘 어렵다는데 대표는 외제차를 탄다. 그리고 항상 늦게 출근한다.

- 국가 지원 사업이 있으면 일단은 지원하고 본다. 그 회사가 할 인력이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 연봉 협상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

- 직급이 빨리 바뀐다. 하지만 승진을 한다고 연봉이 오르는 것은 아니다.

- 대표의 친인척이 근무 중이다. 그리고 그 친인척은 월급루팡.

  이 밖에도 디테일들이 많은데, 이걸 어떻게 다 녹여냈는지 놀라울 따름이다. 더 놀란 것은 연출한 사람이나 스탭들이 어떤 프로덕션이나 회사 소속이 아니었다. 여행 유튜버인 '빠니보틀'('좋좋소' 이후 팬이 되었다)이 원안과 연출을 했고 배우들도 기성 배우가 아닌 단역, 연극무대 배우들이었다. 이과장은 그야말로 일반인 '이과장'이었다. 코시국 이후 '세상이 정말 변했구나'라고 느끼는데 '좋좋소'의 제작진과 캐스팅을 보고도 같은 생각이 들었다. 새삼스럽지만 제도권 밖에서도 퀄리티 있는 콘텐츠는 충분히 나올 수 있다. 전통적으로 '입봉'을 하기 위해 거쳤던 과정들이 아직도 유의미 하겠지만, 이제는 더욱 '무엇을 어떻게 보여주느냐'라는 콘텐츠의 본질이 더 중요해지고 있다. 찾아보니 연출자인 빠니보틀님은 다시 해외 여행을 시작하여 여행 콘텐츠를 만들고 있다. (빠니보틀님의 차기작을 기다립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이입한 캐릭터는 역시 '이과장'이다. 비슷한 나이대의 동질감이겠지. 40대에 그 정도 수준의 연봉을 받으며 온갖 구질구질함을 참고 일했는데 이제는 떠나야함을 느꼈을 때. 후반에 이과장의 고뇌와 암담함이 잘 나타나서 좋았다. 결국 이과장은 정승을 떠나 백차장의 회사로 가는데, 한편으로는 다행이면서도 슬펐다. 이과장이 백차장 회사로 가고 싶어서 옮겼을 것 같지는 않다. 그가 어쩔 수 없이 좋좋소를 연장시킬 수밖에 없는 현실에 완전히 몰입했다. (하지만 현실의 이과장은 구독자 46만의 유튜버로 변신! 사는 게 그리 암담하지만은 않을 수도 있다.)

  이달 초 40대의 중반에 나 역시 한 중소기업을 떠났다. 이제 더 이상의 입사도 좋소기업 분투기도 내 생애에 없을 것도 같은데 그래도 불안해하거나 조급해 하지 않기로 했다. '좋좋소'를 보고 더 확신이 든다. 감히 올해 본 최고의 웹드라마로 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