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판매 아르바이트 3개월 째.
시작은 이랬다.
올 초부터 회사의 사정은 최악이었다. 회사 통장은 물론이고 각자 개인 통장의 잔고도 바닥이었다.
회사 대표이자 남편에게 고민 끝에 다른 일자리를 알아보겠다고 했다. 그런데 40대의 경력이 애매한 기혼녀가 취업할 수 있는 곳은
너무나 한정적이었다. 두어군데 이력서를 넣어 본 뒤 정신이 번쩍 들었다. 비참했다.
어짜피 사무직은 글렀고 어쨌거나 일용직을 할거라면 가까운 사람부터 공략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몇 년전부터 지인과 회사를 차려 시내 몇 군데 디자인 용품 가게가 있는 동생에게 연락했다.
'알바 필요하면 연락다오.'
마침, 동대문 DDP에 샵의 아르바이트가 관둔 시점이라 마침 사람이 필요하다고 했다.
난생 처음 판매직 일을 해보았다. 비싸고 예쁘지만 없어도 전혀 지장없는 물건들이 잔뜩 모인 가게에서 주말마다
3개월 째 일을 하고 있다. 솔직히 말하면 가계에 보탬이 되는 수익이라기 보다는 부업 정도의 임금을 받고 있다.
그래도 새로운 영역이라 재미있는 일도 많다. 물건을 판다는 것이 어떻게 보면 손님과의 심리전이기 때문이다.
'이 제품은 우리만 수입한 것'이라거나 '저도 써봤는데 무척 좋더라'는 거짓말도 하게 되고 '이게 비싸도 저희 강남매장에서는
없어서 못 팔아요' 식의 자극 주기까지. 갈수록 심리전의 요령을 터득하게 되고 매출이 잘 나올수록 은근한 쾌감이 생긴다.
위치가 관광지라 외국인들과의 대화도 흥미롭다. 중국, 일본, 미국, 호주, 독일, 스페인, 사우디, 헝가리, 러시아, 인도 등등에서
우리 나라를 보러 온 사람들. 그냥 어쩐지 이들에게 좋은 기억이 되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뿐만 아니라 다양한 인간 군상들을 본다.
권위적인 아버지, 신경질적인 여자친구, 돈을 과시하는 사람, 친절과 겸손이 몸에 밴 사람 등 수 많은 인간들의 면을 그 작은 공간에서
짧은 시간 동안 느끼게 된다. 또 많은 관광객들 틈에서 주말 아침부터 지하철을 타서 일터로 가는 사람들. 나 같은 사람들. 주말의 여유를
버리고 일터로 향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힘내요, 우리' 괜히 말해주고 싶고.
영화 일 외에는 해본적이 없는 내가 그래도 이번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깨닫게 된 사실은 그 동안 영화판에서 보낸 시간이
헛되지만은 않았다는 거다. 나름대로 열악하고 고된 상황을 많이 겪어서인지 온갖 사람들을 상대해야 하는 일을 그럭저럭 견뎌내고 있다.
주말 중 하루를 바깥에서 보내야 하기 때문에 아이들에게는 미안하다. 하지만 아이들이 제 아빠와 보내는 시간들이 많이 늘었다.
자기들끼리의 추억을 차곡차곡 만들어 가고 있다.
언제까지 이 일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재미있게 계속 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