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소설을 무시하지 말지어다
직업 관계상 영화 시나리오 투고나 공모전 심사를 몇 번 해보았다. 지망생들의 절절한 노력이 담긴 소중한 원고들이지만 안타깝게도 많은 작품들이 기준 미달인 경우가 많았다.
그러다 몇 년 전 우연히 드라마 공모전으로 접수된 대본들을 검토할 기회가 생겼다. 그리고 무척 놀랐던 사실은 작품의 필력이 평균적으로 영화 시나리오에 비해 높았다는 것. 기획이 월등히 좋다고는 말하기 힘들지만 맞춤법, 문장력 등 기본적인 글의 수준은 드라마 대본이 더 좋았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하다가 개인적으로 내린 결론은 작업료였다. 아무래도 시나리오 작가에 비해 드라마 작가의 작업료가 더 높은 것과 관련이 있겠다 싶었다. 결국 돈이 되는 쪽에 글 잘 쓰는 인력이 모이는 것이니까.
그 현상을 요새 웹소설 분야에서 본다. SNS에 떠도는 얘기이긴 하지만, 웹소설을 2년 연재하면 서울에 아파트를 살 수 있다고 한다. 대체 웹소설이 무엇이길래. 이렇게 돈을 끌어모으는 걸까.
같이 사는 두 십대 녀석들에게 몇 편의 웹소설을 추천 받아 읽었다. 일단 제목부터가 자극적이고 설정이 허황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책을 읽을 때 잘 정돈된 문장을 좋아하는 터라 웹소설 특유의 단문 문장들이 적응되지 않아 읽기 힘들었다.
최근에 마음 먹고 웹소설을 보았다. 전에는 출판된 도서로 읽었다면 이번에는 철저하게 스마트폰으로만 보았고 유튜브 등 인터넷을 뒤져가며 웹소설의 생태와 구조를 공부했다. 그리고 놀라운 결론을 얻었다. 웹소설 작가들은 클리셰의 천재들이구나.
초반에 이야기의 힘을 주고 그것을 동력으로 연재하여 독자로 하여금 계속 결제를 유도해야하는 웹소설. 그 한 편 한 편이 고농도의 장르 결정체였다. 많은 편의 웹소설 중 인기작 위주로 골라보았다. 그런데 이야기 구조와 클리셰를 다루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었다. 불필요한 것들은 없애고 압축적이고 강력한 서사를 대놓고 보여준다. 물론 개연성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지만 웹소설의 세계에서는 이게 뭔 대수냐 싶은거다. 회귀나 빙의, 게임 속 설정…이 모든 것이 웹소설의 세계에서는 장르가 된다.
올해 제작하는 드라마 <재벌집 막내 아들>에 송중기가 캐스팅 되었다고 한다. 재벌 그룹의 평사원이 억울한 죽음을 당했는데 그가 재벌집 막내 아들로 회귀해 권력을 얻고 자신을 죽인 자를 처단한다는 내용의 웹소설이 원작이다. 이미 웹소설이 주류가 되었다. 점점 더 글발 있는 작가들이 웹소설로 모일 것이다. 웹소설에 대한 편견이 있었다면 당장 없애는 것이 좋겠다. 웹소설의 진화를 흥미롭게 지켜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