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의 인간 관계, 쉽지 않네요
20대 때는 내가 '인싸'라고 믿어 의심하지 않았다.
서른 살이 되기 직전 치뤄진 나의 결혼식에서도 내가 인싸임이 증명되었다고 본다.
직계 가족과 친척들과의 사진 촬영 후 찍은 친구 사진을 무려 세 번이나 찍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마지막에는 사람이 너무 많아 사진사 분이 '첫번째 줄은 무릎을 꿇으세요'라고 주문했을 정도다.
물론 이 때의 친구들은 중고등학교, 대학 그리고 사회 생활에서 만난 사람들이 다 포함되었다. 친밀의 정도는 있었지만 결혼식에 불렀을 정도니 가끔 전화해서 만나는 것도 자연스러웠고 단체로도 많이 만나곤 했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영양가는 없는 만남도 많았지만)
30대는 실직, 출산, 독박육아, 모친상 등 인생의 지옥 속을 헤매느라 인간 관계에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둘째를 낳고 1년 정도 지났을 무렵이었다. 두 아이에 치여 거의 짐승 같은 몰골로 집에 있는데 문득 지난 1년간 사교를 위해 가족 이외의 사람들을 만난 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닳았다. 큰 충격이었다. 휴대폰을 열고 주소록을 첫번부터 마지막까지 모두에게 전화를 걸어 보기도 했다. 정말 사람들이 절실했던 시기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관계가 회복될 수는 없었다. 온 종일 돌봄이 필요한 두 아이를 잠시라도 떼어놓고 사교를 할 수가 있었느냐 말이다. 물론 잠깐 애들을 맡기고 점심을 같이 먹을 수 있는 정도였지만, 오로지 내가 원하는 대로 사람들과 부대끼고 즐기는 만남은 불가능했다.
이제는 마흔이 넘고 정신과 시간에 여유가 생겼다. 그 동안 정지되었던 인간 관계를 되돌려보고 싶었다. 그런데 현실은 단절된 관계 때문에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
제일 먼저 단체 속에서 알게된 관계들이 정리되었다. 각자 사는 것이 바빠서 단체가 유지되지 못하니 굳이 만날 일이 없어진 것이다. 어쩌다 생기는 결혼식, 돌잔치, 장례식에서 보는 사이. 딱 그 정도의 인간 관계가 된 것이다. 그 다음에는 사회에서 단발로 만난 이들. 이를테면 교육 과정 중에 만났다든지, 근속 연수가 적었던 직장에서의 동료가 이 부류에 속한다.
정리된 관계 중 가장 마음이 쓰였던 부류는 '찐친'이라고 생각했던 부류들이다. 중고등학교 때부터의 인연들인데 그들과 인연을 정리한 계기는 한 마디로 표현하면 '만나도 더 이상 즐겁지 않다'는 것. 20대 때 만났을 때는 그렇게 즐겁고 유쾌했는데 시간이 지나 만나고 나면 찝찝한 마음이 생기기 시작했다.
각자의 삶이 다르다 보니 가치관이 서로 판이하게 달라진 것이다. 이를테면 돈, 사교육, 부동산만이 삶의 이유인 것만 같은 친구, 보수 기독교 사회에 갇혀 극우, 동성애 혐오, 반페미니즘적 견해를 가진 친구, 나를 본인의 사업적 이익을 위해 만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던 친구, 등 더 이상 관계를 지속해야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만남들이 하나 둘 정리되었다.
새 인간 관계를 만나면 되지 않을까? 그런데 이게 또 쉽지 않다. 40년 이상 살면서 만들어진 나만의 기준이 생긴 것이다. 조금이라도 나와 결이 다르다고 느끼면 더 이상 관계를 진전시키지 못하고 선을 그어 버리기 일쑤다.
잠시 다녔던 직장들에서 나이, 취향, 성향 등이 제각기 다른 사람들을 만나 나름대로 즐겁게 지냈다. 출근하고 매일 만나는 사이의 표본이라고 부르고 싶을 정도로 적당히 지킬 것은 지키고 공유할 것은 공유하며 관계를 쌓았다. 하지만 그 와중에서도 은연 중에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내가 이 회사를 그만두면 이 관계는 결국 소원해지겠지'.
그래서인지, 퇴사 후 내가 예상했던 대로 상황은 흘러가고 있다. 직장 생활이 주었던 관계들이 모두 멀어지고 또 다시 나는 혼자가 되었다.
이쯤되면 그냥 소신껏 알아서 혼자 놀면서 잘 살면될텐데. 왜 외로움은 더 자주, 더 세게 오는지 모르겠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서로 연락이 뜸했던 사람들에게 먼저 연락할 부지런함도 성의도 없다. '나란 인간은 외로워도 싸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오랜 기간 연락을 하지 않고 지내던 후배에게 전화가 왔다. 또 작년에 문든 연락이 닿은 예전 직장 친구가 나를 계속 불러낸다. (마실수록 매력있는 소백산 청 동동주도 선물 받았다.)
그래, 일단 만나자. 만나서 행복하다고 느껴지면 공을 들이자.
쉽지 않지만 아예 불가능한 것은 아니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