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빵사 자격증 3개월 만에 따기
올 4월부터 집 근처 여성 발전 센터에서 3개월 짜리 제빵 기능사 과정을 수강했다.
기간 중 필기 시험은 땄고 수강 마지막 주에 실기 시험을 치렀는데 결과는 합격.
그에 대한 기록을 남겨 보고자 한다.
0. 개인적 사정
평소에 홈베이킹을 해본 경험이 있다. 주로 책이나 유튜브를 보고 빵이며 쿠키를 만들어 봤다.
독학인 만큼 만들어내는 퀄리티는 솔직히 썩 좋진 않았는데, '홈메이드'라는 딱지를 붙이고 보면 그런대로 먹을 만한 빵과 과자들이었다.
또 워낙 나는 빵과 과자를 좋아한다. 체중과 건강 문제로 줄이려고 하지만 시내 유명 빵집이나 제과점은 좀 찾아다니는 편이다.
베이킹 관련 유튜브나 인스타그램도 평소에 잘 챙겨본다. 최근에 가장 재미있게 본 것은 넷플릭스 '셰프의 테이블' - 페이스트리 쉐프 편.
제빵을 배우고 싶은 마음은 예전부터 있었다. 왜냐하면 집에서 혼자 하는 것만으로는 답답한 부분이 많았기 때문이다.
왜 내가 굽는 식빵은 잘 부풀지 않는지, 케이크 시트는 어떻게 해야 거품이 꺼지지 않는지 등 그 동안 홈베이킹을 하면서 쌓였던
시행착오들을 해결하고 싶었다. 다만 배우는 시점은 좀 더 나이가 들고 난 은퇴 이후의 시점이라고 생각했는데 여러 가지 이유로
미루던 제빵 배우기를 실현한 것이다.
1. 여성 발전센터 제빵 기능사 과정
마음은 유명 학원이나 클래스에 등록하고 싶었지만 수강료가 부담이 되었다. 운 좋게 집 근처에 여성 발전센터가 있어서
등록했다. 수강료가 저렴한 만큼(3개월에 재료비 포함 20만 원 정도) 솔직히 세심한 교육은 못 되었다. 5인 1조로 진행되는
실습이라 적극적으로 임하는 만큼 얻어가는 환경이다. 계량, 반죽, 성형, 오븐 등 공정을 배울 때 아무래도 나보다 더
적극적인 사람이 실습을 주도하게 마련인데 그래도 주눅들지 않고 참여하면 많이 얻어갈 수 있다.
첫 달은 엄청 헤맸고 두번 째 달부터 공정이 익숙해 지기 시작했다. 마지막 달은 실기 시험을 준비한다는 생각으로 실습했다.
실제 수업 시간은 3시간인데 수업 기간 중반부터는 하루에 빵 두 가지를 실습했다. 그래서 3시간만으로는 부족해서 미리 한 시간
더 일찍 와서 반죽을 마쳐야 했다. 바쁜 아침 시간이지만 되도록 일찍 오려고 했는데 그래야만 모든 공정에 참여할 수 있었다.
간혹 독학으로 자격증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도 있다고는 하는데 개인적으로는 추천하지 않는다. 이 자격증이라는 것이
일종의 운전면허 시험 같아서 규격화된 공정과 도구 숙지가 너무나 중요하다. 실제로 빵을 얼마나 잘 만드느냐 보다는
자격증 시험이 요구하는 것을 얼마나 잘 따르는지가 더 중요한 것 같다. 여성 발전센터의 제과제빵 실습실은 나름대로
시험장과 유사한 도구와 환경이어서 도움이 되었다.
2. 필기시험 준비
교재를 구입하고 필기 시험 접수를 하고서야 이론 공부를 했다. 단순히 제과 제빵학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영양학 위생학 등이
어려웠다. 기출 문제를 많이 풀어 보고 틀린 것 위주로 다시 공부했는데 제빵 기능사 필기 시험인데도 제과 관련 문제 비중이
적지 않아서 처음에는 당황스러웠다. 그런데 알고보니 제빵 기능사 자격증을 취득하면 제과 기능사 필기는 면제였다. (2022년 기준. 요새는 각각 별도의 필기 시험을 봐야하는 걸로 알고 있다.)
따라서 제빵필기임에도 제과 관련 문제도 나오는 것 같았다. 그럼에도 제과는 제품 자체를 모르기 때문에
(데블스 푸드 케이크니 옐로우 레이어 케이크니) 어려웠는데 그냥 기출 문제를 많이 풀어보면서 외웠다.
여성 발전센터 강사님이 쓴 이론교재로 공부하다가 '제과제빵 필기시험' 앱이 있다는 것을 필기 시험 3일 전에야 알게 되었다.
몇 년치 기출 문제를 실제 CBT 시험 처럼 스마트 폰 화면에 출제하는 앱이었다. 오답 문제도 저장해서 따로 볼 수 있었다.
막판에 이 앱이 정말 많은 도움이 되었다. 기출 문제가 그대로 나오는 경우도 있었다.
필기 시험에서는 기출 문제를 많이 풀고 또 계산 문제를 놓지 않았다. 시험 문제 중 계산 문제가 대여섯 개 되는데
처음에는 포기했는데 마지막에는 계산 공식만 따로 외웠다. '다음중 무엇무엇이 아닌 것을 고르시오' 같은 유형의
문제가 오히려 헷갈리고 계산 문제가 오히려 답을 맞추기 쉬웠다. 마찰 계수, 얼음양, 칼로리, 비중 구하기 등
계산 문제가 득점에 도움을 주었다.
3. 실기시험 준비
여성 발전센터 수업 전 후로 항상 동영상을 챙겨봤다. 동영상은 경기도 온라인 평생학습 서비스 - 지식 캠퍼스에 있다.
https://www.gseek.kr/main/intro
여기서 회원 가입을 하고 '제빵 기능사'를 검색하면 실기 시험 종면 25가지 동영상을 무료로 다 볼 수 있다.
물론 소소한 공정이라든지 오븐 온도 등이 여성 발전센터에서 배운 것과 다른 부분도 있었지만 까다로운 성형법은
틈틈히 보면 많은 도움이 되었다.
집에서의 연습이 필요하다. 근데 이게 사실 쉽지 않다. 일단 도구부터 한계가 있기 때문인데, 그럼에도 실기 품목
몇 가지는 집에서 만들어 봤다. 집에 반죽기가 없어서 계량을 1/4로 나누어서 오성 제빵기로 반죽을 했고 가정용
오븐으로 구웠다. 모카빵, 소시지빵, 식빵, 스위트 롤, 버터롤 등을 만들어 봤는데 비록 집에서 연습하지 않은 품목이
시험에 나왔긴 하지만 자신감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집에서 연습하니 모든 것을 나 스스로가 판단해야 하니
센터 수업만큼 유익했다.
실기 시험 막판에는 노트 정리를 많이 했다. 예를 들어 특정 품목을 써놓고 그에 대한 공정을 주르륵 써 넣은 식으로.
(예. 소보로빵 - 최종단계 반죽(27도)- 1차 발효(60-90분) - 토핑 만들기 - 분할- 둥글리기- 중간 발효 - 성형....
오븐온도 190/170...)
4. 네이버 까페 '시나몬롤'
많은 도움을 받은 커뮤니티다.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한 달간 기출된 실기 품목이 겹치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어느 시험장에 언제 어떤 품목이 나왔는지를 서로 공유한다. 친절한 까페 회원들이 '*월 ** 시험장 실기 기출문제'를
리스트로 정리해서 공유하고 있었다. 간혹 겹치는 품목이 있었지만 대개 그 달에 한 번 출제된 제품은 제외되었다.
나도 예상했던 제품 중에서 출제되었다. 뿐만 아니라 실기 시험 유의 사항이며 준비물 등 자격증 시험과 관련된 내용도
도움이 되었고 자격증 후 취업이나 창업 상담도 이루어지는 것 같았다.
5. 실기 시험 당일
솔직히 매우 운이 좋았다. 위에서 처럼 예상했던 제품이 출제되었고 실수가 많았는데도 합격했다.
시험 품목은 밤식빵이었다. 집에서 연습은 못해봤지만 센터에서 두 번이나 실습한 품목이고 단과자류처럼
갯수가 많지도 않고 지옥의 페이스트리도 아니었다.
첫 실수는 계량부터 있었다. 계량하는 것이 생각보다 너무나 어려웠다. 본격적으로 계량을 진행하기 전에
추정치를 담아와야 하는데 여러 사람이 한꺼번에 재료를 담느라 정신이 없었다. 결과적으로 두 가지 재료를
한꺼번에 계량하는 실수를 해서 감점.
반죽을 하는데 일단 기계가 낯설어서 허둥대고 반죽 온도를 맞추지 못했다. 27도가 나와야 하는데 30도가
넘어버린 것. 여기서 또 감점.
1차 발효를 시키는데 또 내가 뽑은 발효실 위치가 가장 열이 센 윗칸이었다. 결과적으로 과발효가 되었다.
여기서 '아 망했다'는 느낌이 제대로 왔는데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과발효라 반죽이 더 쳐지기 전에
빨리 빨리 공정을 진행했고 성형이나 토핑 짜기 등을 그런대로 해냈다. 그러다 보니 1등으로 오븐으로 넣고
완성도 제일 먼저했다. 오븐에서 빵들을 꺼내는데 과발효 + 가스 빼기 실패인지 제품 5개 중 2개의 윗부분이
터진 것이다. 그런데 빵의 옆색 밑색은 그런대로 잘 나와서 다행이었다. 아무튼 1차 발효 이후 이미 마음을 비운 터라
당당하게 제일 먼저 내고 나왔다.
첫 실기는 경험이라고 생각하면서 마음을 비웠는데 정말 간신히 합격했다. 끝까지 침착했던 것이 효과를 거둔 것 같다.
실기 시험장에 젊은 사람들이 훨씬 많아서 사실 좀 쫄기도 했는데 이 자격증이 뭐라고 참 뿌듯하다.
성취감이 생각보다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