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거꾸로 가는 남자'
넷플릭스에 올라온 프랑스 영화.
대학 시절에 읽은 '이갈리아의 딸들'이 생각나는 영화였다.
90년대 중반, 내가 대학생이었을 때 '페미니즘'이 나름대로 이슈였고 관련된 이론서나 전문가들이
많이 등장했었다. 대학생활을 여자 대학에서 시작한 나 역시 여성학 수업을 듣고 관련 책들을 파보던
기억이 난다.
20여년이 지난 지금, 다시 페미니즘이 화두다.
안타깝게도 지난 20년간 성평등은 체감상 별로 이루어지지 않은 듯 하다.
작년이었던가 미국 뉴욕에서 성평등 시위 때 어떤 할머니의 피켓 내용이 잊혀지지 않는다.
'I can't believe I still have to protest this fucking shit.'
(의역하자면 - 내가 이 나이에도 여전히 이 X같은 불평등 때문에 시위에 나와야 하다니 믿을 수 없다)
물론 많은 이들이 성평등을 위해 끊임없이 치열하게 노력해 왔다. 하지만 세상은 아직도 왜 이 모양일까.
왜 '혐오'는 계속되고 심지어 성평등 이슈는 또 다른 차별의 수단이 되고 있을까. 게다가 성차별과 혐오는
기본적인 안전과 인권도 깔아뭉개고 있으니 암담하다.
20대 때 반짝 페미니즘에 관심만 갖고 실제 현실에서는 여전히 침묵하고 방관한 사람들 때문이 아닐까.
나 같은 사람을 포함해서 말이다.
아무튼 그런 의미에서 '거꾸로 가는 남자'를 재미있게 보았다.
전형적인 '개저씨'인 주인공이 사소한 충돌 사고 후에 깨어나 보니 사회가 여성과 남성의 성역할이 완전히
뒤바뀌어 있다는 설정이다. 길을 갈 때마다 여자들이 성적인 농담과 추파를 던지고 여자 상사는 공공연하게
성추행을 한다. 남자들을 억지로 가슴털을 밀고 가사에 매진해야 하며 여성들이 주도하는 시스템에
순응하지 않으면 안된다.
모든 광고판이 이쁘고 섹시한 남자 모델들로 도배되어 있고 남자는 짧은 바지를 입고 다리를 다 드러내놓는 것이
은연중에 강요되는 사회. 반면 여자들은 수트를 입고 다리를 벌리고 앉으며 성욕을 당당히 드러내고
임신과 출산을 권력으로 여긴다.
바뀐 성역할에 관련된 디테일을 보면서 통쾌하기도 했지만, 결국 거기에 완전히 대응되는 현실의 남성중심
사회를 보여주는 것이라서 씁쓸했다.
프랑스 영화 특유의 쿨한 엔딩(헐리웃 영화처럼 쥐어짠 결말을 내놓지 않는다는 의미)도 신선했다.
이 영화를 리메이크하면 어떨까?
한국 상업 영화 시장에서 먹힐지 의문이다. 독립영화나 저예산 영화 소재 같다고 치부해 버릴 것 같다.